중도

운영자:현법/ 시작일2016-09-19 오전 7:02:09
주제

깟짜나곳따 경 (S12:15)

Kaccānagotta-sutta


2. 그때 깟짜나곳따 존자가 세존께 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니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깟짜나곳따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3. “세존이시여, ‘바른 견해[正見], 바른 견해’라고들 합니다.

세존이시여, 바른 견해는 어떻게 해서 있게 됩니까?”


4. “깟짜야나여, 이 세상은 대부분 두 가지를 의지하고 있나니

그것은 있다는 관념없다는 관념이다.

깟짜야나여, 세상의 일어남을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는 자에게는

세상에 대해 없다는 관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깟짜야나여, 세상의 소멸을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는 자에게는

세상에 대해 있다는 관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5. “깟짜야나여, 세상은 대부분 [갈애와 사견으로 인해]

집착과 취착과 천착에 묶여 있다.

그러나 [바른 견해를 가진 성스러운 제자는]

마음이 머무는 곳이요 천착하는 곳이요 잠재하는 곳인

그러한 집착과 취착을 ‘나의 자아’라고 가까이 하지 않고 취착하지 않고, 고수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괴로움이 일어날 뿐이고, 단지 괴로움이 소멸할 뿐이다.‘라는 데 대해서

의문을 가지지 않고 의심하지 않는다.

여기에 대한 그의 지혜는 다른 사람을 의지하지 않는다.
깟짜야나여, 이렇게 해서 바른 견해가 있게 된다.” 


 6. “깟짜야나여, ‘모든 것은 있다.’는 이것이 하나의 극단이고

 ‘모든 것은 없다’는 이것이 두 번째 극단이다.

 깟짜야냐여, 이러한 양 극단을 의지하지 않고

중간(中)에 의해서(*1) 여래는 법을 설한다.


무명을 조건으로 의도적 행위들이, 의도적 행위들을 조건으로 알음알이가,

알음알이를 조건으로 정신·물질이, 정신·물질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장소가,

여섯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감각접촉이,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발생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발생한다.


그러나 무명이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하기 때문에 의도적 행위들이 소멸하고,

의도적 행위들이 소멸하기 때문에 알음알이가 소멸하고,

알음알이가 소멸하기 때문에 정신·물질이 소멸하고, 

정신·물질이 소멸하기 때문에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고,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기 때문에  감각접촉이 소멸하고,

감각접촉이 소멸하기 때문에 느낌이 소멸하고,

느낌이 소멸하기 때문에  갈애가 소멸하고,

갈애가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이 소멸하고,

취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소멸한다.”


 (*1)‘중간[中]에 의해서’는 majjhena를 옮긴 것이다.

아래 나체수행자 깟사빠 경(S12:17)에서는 이 majjhena를

“‘중간에 의해서 법을 설한다(majjhena tathagato dhammaṃ deseti)’는 것은

상견과 단견이라 불리는 양극단(ubha anta)을 의지하지 않고(anupagamma),

제거하고(pahāya), 집착하지 않고(anallīyitva),

중도(中道, majjhimā paṭipadā)에 서서 설하신다는 뜻이다. 
 어떤 법을 설하셨는가라고 한다면,

바로 이 ‘무명을 조건으로 의도적 행위들이 있다.’는 것 등이다.”(SA.ⅱ.36)라고 설명하고 있다. 


 주석서에서는 이처럼 양극단을 여윈 중간[中, majjhena]을

중도(中道, majjhimā paṭipadā)로 설명하고 있기는 하지만,

초기불전 자체를 두고 보자면 중도는 팔정도를 말한다. 
대승불교에 익숙한 우리는 중도하면 중관학파에서 주장하는 팔불(一異·去來·有無·斷常)중도,

空·假·中의 중도를 먼저 떠올려 실천체계의 중도를 관념적으로 만들 위험이 크다.

초기불전에서의 중도는 길 위(paṭi)를 밟으면서 걸어가는(padā) 실천도(도닦음, paṭipadā)인 팔정도이고,

중론(中論)의 중도는 연기에 대한 통찰지이며, 팔정도의 정견의 내용이고, 유무의 중간이다. 


  출처 : 각묵스님옮김 『상윳따니까야』2권 p.138-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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