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의(作意)

운영자:현법/ 시작일2016-09-05 오후 3:24:13
주제

상좌불교를 접하면서 용어의 혼란을 느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혼란의 원인은 아무래도 우리나라에 상좌불교가 전래된 역사가 짧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각 단체나 개인이 쓰는 용어가 통일되어 있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게 제각기 다른 해석과 용어를 접하는 일반독자들의 경우 교리이해에 혼선을 초래하게 되기 때문에

상좌불교 용어의 정립과 통일은 어떻게 보면 지금 전재성씨나 초기불전연구원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삼장번역보다도 더 중요한 일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구구절절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용어들을 들자면 수도 없이 많지만 오늘은 마나시까라(Manasik?ra)를 살펴보겠습니다.


초기불교원의 번역 : 마음에 잡도리함


한역: 작의(作意)


영어 불교사전: attention


빠알리어 어원적 분석: 마음에 만든다


한자투의 번역어를 지금 사용하는 것 또한 역사, 문화적 배경을 무시한 아주 무책임한 번역입니다.

 

아무튼 빨리어 단어를 분석하여 보면

마나시까라의 문자적인 의미는 ‘마음에 만든다’는 뜻임을 알수 있습니다.

 

그럼 뭘 마음에 만드냐 하면 대상에 마음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이라 할수 있습니다.

이 마나시까라는 중생의 모든 마음이 일어날때 없어서는 안되는 일곱 가지 마음의 작용들중 하나 입니다.


그런데 이 용어를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마음잡도리’로 번역하여 독자로 하여금 이중으로 사전을 들쳐보는 수고를 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냥 영어처럼 간단명료하게 ‘주의기울임’이라 번역했었다면 독자들이 금방 이해할수 있는데 말입니다.

 

물론 저는 여기서 초기불전연구원의 그간의 역경사업에 대한 공로와 수고를 폄하하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다만 이러한 예에서 보든 상좌불교 용어는 가급적이면 부연설명없이도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수 있는 말로 번역해줘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과거 구태의연한 한자투의 용어도 이제는 지양해야 하고 그렇다고 널리 통용되지 않는 생퉁맞은(?) 한글번역도 지양되야 합니다.

 

그리고 빨리어 용어의 정확한 우리말 정립과 해석이 필요한 경우는 구미에서 이미 이루어진 영어정의와 해석을 두루 참조하는 것이 빨리어 자체에 대한 이해와 함께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구미권의 빨리어와 상좌불교에 대한 연구는 이미 100년이 넘기 때문에 그러한 서구학자들의 연구성과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직 초보적 수준에 머물고 있는 우리나라 상좌불교에는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교계에 만연한 중구난방식의 불교용어를 통일하고 이들 용어에대한 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서라도 언젠가 우리도 서양 나냐띨로까스님의 <Buddhist dictionary>처럼 가칭 <상좌불교용어전문사전>이나 <빨리어-한글 소사전>과 같은 Manual Book이 우리말로 나와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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