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경전에서 말하는 공(suñña)이란?

운영자:연화/ 시작일2019-01-22 오후 7:48:49
주제



언제나 그렇듯이 공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혼란스러워집니다. 더구나 공성이라 했을 때 더욱 더 난해하고 심오한 느낌입니다. 여기에다 공, 가, 중 삼제로 설명할 때 오리무중으로 빠지는 듯한 느낌입니다. 공이라는 단어가 갖는 모호함 때문일 것입니다.


가급적 공이나 공성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의미가 불분명하고 잘못 사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모두 공한 것이다’라 했을 때 허무하게 느낄 것입니다. 공한 것도 공한 것이라 했을 때 무기력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공이라는 말 대신 ‘연기’라는 말을 사용하면 명확해집니다.


부처님은 공이나 공성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애매모호함 때문인지 모릅니다. 부처님이 공이나 공성이라는 말을 사용했을 때는 주로 ‘비어있음(mptiness)’의 의미입니다. 이는 부처님이 “이 마가라뚜 강당에는 꼬끼리들, 소들, 말들, 암말들이 공하고 금이나 은도 공하고 여자나 남자들의 모임도 공하다.”(M121)라고 말씀한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를 달리 해석하면 연기이기 때문에 공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그러나 단지 공하지 않은 것이 있다.” (M121)라 했습니다. 공하지 않은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열반을 말합니다. 열반을 공한 것으로 보고서 부처님은 “아난다여, 나는 요즈음 자주 공에 든다. (Suññatāvihārenāhaṃ ānanda)”(M121)라 했습니다.


부처님이 공에 들어 머문다고 했을 때 이는 열반을 말합니다. 이는 공을 수관하여 얻은 아라한과의 증득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맛지마니까야 ‘공에 대한 작은 경’(M121)에 따르면, 7단계로 청정한 공의 경지를 규명해 들어갑니다. 청정도론에서는 공해탈이라 하여 “그들에게 실체없음으로부터 출기가 있다면, 그들 세 사람은 영지가 강해져서 지혜의 능력을 얻고, 있음의 여읨(공)에 의한 해탈을 통해 해탈하고, 첫 번째 길의 찰나에 진리를 따르는 님이 된다.”(Vism.21.89)라 했습니다.


초기경전에서 공은 기본적으로 빈 것입니다. 이는 빠알리사전에서 순냐(suñña)에 대하여 ‘empty’의 뜻인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티벳불교에서는 공성이라 하여 최고로 추구해야 할 가치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공이나 공성에 대하여 청정도론에서는 대개 ‘실체 없음’의 뜻으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고성제와 집성제와 관련하여 “항상하고, 아름답고, 안락하고, 실체가 있는 상태가 없는 까닭에 텅 빈 것이고, 불사의 진리에는 실체가 텅 빈 것이다.”(Vism.16.90)라 했습니다.


중론 게송을 보면 공성에 대하여 연기가 곧 공성이라 했습니다. 이는 연기와 공이 같은 말임을 말합니다. 이와 같은 연기공은 청정도론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청정도론 17장 지혜의 지평에 따르면 “열두 가지 공성이 있는 까닭에 그 존재의 수레바퀴는 공하다.” (Vism.17.283)라 했습니다. 여기서 열두 가지 공성이란 십이지연기의 고리를 말합니다. 중론에서 말하는 연기가 곧 공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초기불교에서 공은 기본적으로 빈 것입니다. 빈 것은 ‘실체가 없음’을 말합니다. 실체가 없다는 것은 연기함을 말합니다. 실체가 없는 것은 오온도 해당됩니다. 실체가 없는 오온은 내 것이 아닙니다.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배력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청정도론에서는 형성, 유지, 붕괴 이 세가지에 대하여 “누구라도 지배를 행사하지 못한다. 그러한 지배를 행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공한 것이다.”(Vism.20.47)라 하여 무아를 공으로 설명합니다.


부처님은 가급적 공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공이라는 말은 비어 있음의 의미로 사용될 것을 염려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일 모든 것이 비어 있다면, 모든 것이 없다면 허무주의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일까 부처님은 혼란을 야기하고 애매모호한 공이라는 말 보다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연기, 무아, 열반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티벳불교에서 말하는 공성은 연기, 무아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굳이 용수의 중론에 의지하지 않아도 초기경전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 진흙속의 연꽃(http://blog.daum.net/bolee591/16159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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