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차곳따 불 경

운영자:연화/ 시작일2017-07-11 오후 10:55:44
주제

왓차곳따 불 경 M72 82

불의 비유로 왓차곳따에게 설하신 경

 

Aggivacchagotta Sutta(M72)

?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481]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2. 그때 왓차곳따 유행승이 세존을 뵈러 갔다. 가서는 [484]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왓차곳따 유행승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3. “고따마 존자시여, 고따마 존자께서는 ①‘세상은 영원하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계십니까?”19)

“왓차여, 나는 ‘세상은 영원하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다.”

 

19) 본경 §§3~12는 10사무기(十事無記)에 관계된 내용을 담고 있다. 왓차곳따 유행승과 관계된 경들로는 『상윳따 니까야』제3권에 포함된 「왓차곳따 상윳따」(S33)에 포함된 경들을 들 수 있는데, 여기에 포함된 55개의 경들은 모두 본경에 나타나고 있는 10사무기(十事無記)에 관계된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외에도 『상윳따 니까야』제5권 「설명하지 않음[無記] 상윳따」(S44)의 「목갈라나 경」(S44:7)부터 「사비야 깟짜나 경」(S44:11)까지에도 그와 십사무기는 나타나고 있으며, 『앙굿따라 니까야』제1권 「왓차곳따 경」(A3:57)에 도 나타난다. 이처럼 니까야에 포함된 왓차곳따와 관계된 경들은 대부분 십사무기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초기불전에서 십사무기를 다루는 대표적인 경으로는 본서 제2권 「말룽꺄 짧은 경」(M63)을 들 수 있다. 이 경에서 세존께서는 이러한 열 가지 견해 즉10사(十事)아무리 천착해봐야 해탈·열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고(§§7~8=본경 §14

와 비슷함) 대신 사성제에 투철해서 해탈·열반을 실현할 것을 역설하고 계신다.(§§9

~10) 십사무기에 대해서는 그곳 §2의 주해들을 참조할 것.

 

4.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고따마 존자께서는 ②‘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계십니까?”

“왓차여, 나는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다.”

 

5. “고따마 존자이여, 고따마 존자께서는 ③‘세상은 유한하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계십니까?”

“왓차여, 나는 ‘세상은 유한하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다.”

 

6.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고따마 존자께서는 ④ ‘세상은 무한하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계십니까?”

“왓차여, 나는 ‘세상은 무한다하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다.”

 

7. “고따마 존자시여, 고따마 존자께서는 ⑤ ‘생명이 바로 몸이라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계십니까?“

“왓차여, 나는 ‘생명이 바로 몸이라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다.”

 

8.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고따마 존자께서는 ⑥ ‘생명은 몸과 다른 것이라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계십니까?”

“왓차여, 나는 ‘생명은 몸과 다른 것이라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다.”

 

9. “고따마 존자이여, 고따마 존자께서는 ⑦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계십니까?”

“왓차여, 나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다.”

 

10.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고따마 존자께서는 ⑧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계십니까?”

“왓차여, 나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다.”

 

11. “고따마 존자시여, 고따마 존자께서는 ⑨‘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계십니까?” [485]

“왓차여, 나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다.”

 

12.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고따마 존자께서는 ⑩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계십니까?”

“왓차여, 나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라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다.”

 

13. “고따마 존자시여, 이것이 어찌된 사실입니까? ‘고따마 존자께서는 세상은 영원하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계십니까?’라고 여쭈면, ‘왓차여, 나는 세상은 영원하다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고따마 존자께서는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는 … 세상은 유한하다는 … 세상은 무한하다는 … 생명이 바로 몸이라는 … 생명은 몸과 다른 것이라는 …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는 …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계십니까?’라고 여쭈면, ‘왓차여, 나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쓸모가 없다는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무슨 재난을 보시기에 이런 일체의 견해 중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으십니까?”

 

14. “왓차여, 세상은 영원하다는 것은 견해에 빠진 것이고, 견해의 밀림이고, 견해의 황무지이고, 견해의 뒤틀림이고, 견해의 요동이고, 견해의 족쇄이다. 그것은 괴로움과 함께하고20) 속상함과 절망과 열병과 함께하고, 또 그것은 역겨움으로, 탐욕의 빛바램으로, 소멸로, 고요함으로, 최상의 지혜로, 바른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왓차여,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는 …세상은 유한하다는 … 세상은 무한하다는 …생명이 바로 몸이라는 … 생명은 몸과 다른 것이라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는 …[486]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것은 견해에 빠진 것이고, 견해의 밀림이고, 견해의 황무지이고, 견해의 뒤틀림이고, 견해의 요동이고, 견해의 족쇄이다. 그것은 괴로움과 함께하고 속상함과 절망과 열병과 함께하고, 또 그것은 역겨움으로, 탐욕의 빛바램으로, 소멸로, 고요함으로, 최상의 지혜로, 바른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왓차여, 나는 이러한 재난을 보기 때문에 이런 일체의 견해 중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20) “‘괴로움과 함께하고(sadukkhar?)’라는 것은 오염원의 괴로움(kilesa-dukkha)과 과보의 괴로움(vip?ka-dukkha)을 가지므로 괴로움과 함께한다는 것이다. ‘속상함(vigh?ta)’과 ‘절망(up?y?sa)’과 ‘열병(paril?ha)’도 마찬가지로 오염원과 과보의 두 가지 측면을 가진다.”(MA.iii.197)

 

15. “그러면 고따마 존자께서는 어떤 사변적 견해21)도 갖지 않으십니까?”22)

“왓차여, 여래는 사변적 견해를 버렸다. 왓차여, 왜냐하면 여래는 참으로 이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즉 ‘이것은 물질이다. 이것은 물질의 일어남이다. 이것은 물질의 사라짐이다. 이것은 느낌이다. 이것은 느낌의 일어남이다. 이것은 느낌의 사라짐이다. 이것은 인식이다. 이것은 인식의 일어남이다. 이것은 인식의 사라짐이다. 이것은 심리현상들이다. 이것은 심리현상들의 일어남이다. 이것은 심리현상들의 사라짐이다. 이것은 알음알이이다. 이것은 알음알이의 일어남이다. 이것은 알음알이의 사라짐이다.’라고.

그러므로23) 여래는 모든 허황된 생각[空想]과 모든 잘못된 생각,24) 즉 모든 ‘나’라는 것과 모든 ‘내 것’이라는 것과 자만의 잠재성향들25)을 부수고 그것에 대한 탐욕을 빛바래게 하고, 그것을 소멸하고 버리고 완전히 놓아버려 취착 없이 해탈한다26)고 나는 말한다.”

 

21) 여기서 ‘사변적 견해’는 di??hi-gata를 옮긴 것이다. 다른 경들에서는 주로 삿된 견해나 그릇된 견해나 나쁜 견해 등(본서 제2권 「말룽꺄 짧은 경」(M63) §8의 주해, 『상윳따 니까야』제2권 「세상의 이치에 능통한 자 경」(S12:48) §2의 주해 등)으로 옮겼는데 여기서는 문맥에 맞추어 사변적 견해로 옮겼다.

 

22) ‘즉 고따마 존자께서는 어떤 하나의 견해(di??hi)라도 좋아하고(ruccitv?) 인정하여(kham?petv?) 취한 것(gahit?)이 있지 않겠느냐고 질문하는 것이다.”(MA.iii.197)

 

23) “여기서 ‘그러므로(tasm?)’라는 것은 ‘다섯 가지 무더기(오온)의 일어남과 사라짐(udaya-vaya)을 보았기 때문에’라는 뜻이다.”(MA.iii.197)

 

24) “‘모든 허황된 생각[空想](sabba-mannit?)’이란 갈애와 사견과 자만으로 생각되어진 것(ta?h?-di??hi-m?na-mannit?)을 말한다. ‘모든 잘못된 생각[想像, sabba

-mathit?]’은 이것의 동의어(vevacana)이다.” (MA.iii.198)

허황된 생각[空想]에 대해서는 본서 제1권 「뿌리에 대한 법문 경」(M1) §3의 주해 등과 제4권 「요소의 분석 경」(M140) §17을 참조할 것.

 

25) “‘나’라는 것(ahar?-k?ra)’은 사견이고, “내 것’이라는 것(mamar?-k?ra)’은 갈애이고, ‘자만의 잠재성향(m?na-anusaya)’은 자만을 말한다. 그리고 이 셋은 ‘허황된 생각[空想]과 모든 잘못된 생각[想像]’을 분석하여 보이시면서 말씀하신 것이다.”(MA.iii.198)

 

26) “‘취착 없이 해탈한다(anup?d? vimutta).’는 것은 네 가지 취착(up?d?n?)에서 어떤 법도 취하지 않고(anup?diyitv?) 해탈하는 것이다.”(MA.iii.198)

네 가지 취착은 감각적 욕망, 사견, 계행과 의례의식, 자아가 있다는 이론에 대한 취착이다. 네 가지 취착에 대한 설명은 본서 제1권 「바른 견해 경」(M9) §34의 주해를 참조할 것.

 

16. “고따마 존자시여, 이와 같이 마음이 해탈한 비구는 어디에 태어납니까?”

“왓차여, ‘태어난다.’라는 말은 적용될 수 없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렇다면 태어나지 않습니까?”

“왓차여, ‘태어나지 않는다.’라는 말도 적용될 수 없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렇다면 태어나기도 하고 태어나지 않기도 합니까?”

“왓차여, ‘태어나기도 하고 태어나지 않기도 한다.’라는 말도 적용될 수 없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렇다면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

“왓차여,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말도 적용될 수 없다.”27)

 

27) “여기서 ‘태어나지 않는다(na upapajjati).’라는 것에 동의하에 되면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 유행승은 단멸(uccheda)을 취할 것이고, ‘태어난다(upapajjati).’라고 하면 영속(sassata)을, ‘태어나기도 하고 태어나지 않기도 한다(upapajjati ca na ca upapajjati).’라고 하면 일부영속(ekacca-sassata)을,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neva upa-pajjati na na upapajjati).’라고 하면 애매모호 함(amar?-vikkhepa)을 취할 것이기 때문에 세존께서 이것은 근기가 없다(appati??h

a an?lamba)고 하시면서 동의하지 않으셨다.”(MA.iii.198)

단멸(uccheda)과 영속(sassata)과 일부영속(ekacca-sassata)과 애매모호함(amar?

-vikkhepa)에 대해서는 각각 『디가 니까야』제1권 「범망경」(D1)의 §3.9이하와 §1.30이하와 §2.23이하를 참조할 것.

 

17. “‘고따마 존자시여, 이와 같이 마음이 해탈한 비구는 어디에 태어나게 됩니까?’라고 여쭈면 ‘왓차여, 태어난다는 말은 적용될 수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렇다면 태어나지 않습니까?’라고 여쭈면 ‘왓차여, 태어나지 않는다는 말도 적용될 수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렇다면 태어나기도 하고 태어나지 않기도 합니까?’라고 여쭈면 ‘왓차여, 태어나기도 하고 태어나지 않기도 한다는 [487] 말도 적용될 수 없다.’라고 말씀하십시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렇다면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라고 여쭈면 ‘왓차여,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말도 적용될 수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여기서 제게 당황함이 생겼습니다. 여기서 혼돈이 생겼습니다. 제가 이전에 고따마 존자와 대화를 나누면서 깨끗한 믿음이 생겼는데 그것마저도 지금은 사라져버렸습니다.”

 

18. “왓차여, 그대에게 당황함이 생긴 것은 당연하다. 그대에게 혼돈이 생긴 것은 당연하다. 왓차여, 이 [조건[綠]에 대한] 가르침28)은 심오하여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고요하고 수승하고 사유의 영역을 넘어섰고 미묘하여 오로지 현자들만이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29) 다른 견해를 가졌고 다른 가르침을 받아들였고 다른 가르침을 좋아하고 다른 수행을 추구하고 다른 스승을 따르는30) 그대는 알기 어렵다. 왓차여, 그러니 나는 그대에게 반문하겠으니 그대가 생각하는 대로 그것을 설명하라.”

 

28) ‘[조건[綠]에 대한]가르침’은 dhamma를 옮긴 것이다. 주석서에서 “여기서 ‘가르침(dhamma)’은 [본경 §19 이하에서] 조건[綠, paccaya]의 형태로 설해진 가르침(paccay-?k?ra-dhamma)을 말한다.”(MA.iii.193)라고 설명하고 있어서 이렇게 옮겼다.

 

29) 이 정형구는 니까야의 D1 §1.28, D14 §3.1 M26 §19, M85 §43, M95 §17,

A4:192, S6:1 §2 등에도 나타나고 있다.

 

30) “‘다른 스승을 따르는 자(annatr-?cariyaka)’란 조건[綠]의 형태(paccay-?k?ra

) [즉 조건발생임]을 모르는 다른 스승들 곁에 사는 사람을 말하고 그는 그것을 알기 어렵다는 뜻이다.”(MA.iii.198)

 

19. “왓차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일 그대 앞에 불이 타오르고 있다면 그대는 ‘내 앞에 불이 타오르고 있다.’라고 알겠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만일 제 앞에 불이 타오르고 있다면 저는 ‘내 앞에 이 불이 타오르고 있다.’라고 알 것입니다.”

“왓차여, 그런데 만일 그대에게 묻기를 ‘그대 앞에 타오르고 있는 그 불은 무엇을 조건으로 타오르는가?’라고 한다면 그대는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만일 제게 묻기를 ‘그대 앞에 타오르고 있는 그 불은 무엇을 조건으로 타오르는가?’라고 한다면 저는 이렇게 설명할 것입니다. ‘제 앞에 타오르는 불은 마른 풀과 나뭇가지라는 연료를 조건으로 타오르고 있습니다.’라고.”

“왓차여, 만일 그대 앞에 있는 불이 꺼진다면 저는 ‘내 앞에 있던 불이 꺼졌다.’라고 알겠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만일 제 앞에 있는 불이 꺼진다면 저는 ‘내 앞에 있던 불이 꺼졌다.’라고 알 것입니다.”

“왓차여, 그런데 만일 그대에게 묻기를 ‘그대 앞에 불이 꺼졌는데, 꺼진 그 불은 꺼진 후에 어떤 방향으로 갔는가? 동쪽인가? 서쪽인가? 북쪽인가? 남쪽인가?’라고 한다면 그대는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그 말씀은 적당하지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참으로 불은 마른 풀과 나뭇가지라는 연료를 조건으로 타올랐고, 그 연료를 다 써버리고 더 이상 다른 연료를 공급받지 못하면 연료가 없어서 꺼졌다고 합니다.”31)

 

31) 본경 §20에서 열반을 실현한 자인 여래를 설명하기 위해서 본경 §19에서 대화로 드러내신 이 불의 비유는 『상윳따 니까야』제5권 「왓차곳따 상윳따」(S44)의 「토론장 경」(S44:9) §5에서 같은 왓차곳따 유행승에게 하신 “왓차여, 예를 들면 연료가 남아있는 불은 타오르지만 연료가 없으면 타오르지 않는 것과 같다. 왓차여, 그와 같이 취착이 있는 자에게 다시 태어남은 있지만 취착하지 않는 자는 그렇지 않다고 나는 천명한다.”라는 말씀과 견줄만하다. 그곳§5 이하의 주해들도 참조할 것.

 

20. “왓차여,32) 참으로 그와 같다. 사람은 물질[色]로써 여래를 묘사하면서 묘사를 시도하지만33) 여래는 그 물질을 제거했고, 그 뿌리를 잘랐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만들었고, 멸절시켜,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하였다. 왓차여, 여래는 물질이라는 이름에서 해탈하여 심오하고 측량할 수 없고 깊이를 헤아릴 수 없나니 마치 망망대해와도 같다. 그에게는 ‘태어난다.’라는 말이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지 않는다.’라는 말도 적용 될 수 없고, [488]‘태어나기도 하고 태어나지 않기도 한다.’라는 말도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말도 적용될 수 없다.

사람은 느낌[受]으로써 여래를 묘사하면서 묘사를 시도하지만 여래는 그 느낌을 제거했고, 그 뿌리를 잘랐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만들었고, 멸절시켜,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하였다. 왓차여, 여래는 느낌이라는 이름에서 해탈하여 심오하고 측량할 수 없고 깊이를 헤아릴 수 없나니 마치 망망대해와도 같다. 그에게는 ‘태어난다.’라는 말이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지 않는다.’라는 말도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기도 하고 태어나지 않기도 한다.’라는 말도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말도 적용될 수 없다.

사람은 인식[想]으로써 여래를 묘사하면서 묘사를 시도하지만 여래는 그 인식을 제거했고, 그 뿌리를 잘랐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만들었고, 멸절시켜,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하였다. 왓차여, 여래는 인식이라는 이름에서 해탈하여 심오하고 측량할 수 없고 깊이를 헤아릴 수 없나니 마치 망망대해와도 같다. 그에게는 ‘태어난다.’라는 말이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지 않는다.’라는 말도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기도 하고 태어나지 않기도 한다.’라는 말도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말도 적용될 수 없다.

사람은 심리현상들[行]로써 여래를 묘사하면서 묘사를 시도하지만 여래는 그 심리현상들을 제거했고, 그 뿌리를 잘랐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만들었고, 멸절시켜,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하였다. 왓차여, 여래는 심리현상들이라는 이름에서 해탈하여 심오하고 측량할 수 없고 깊이를 헤아릴 수 없나니 마치 망망대해와도 같다. 그에게는 ‘태어난다.’라는 말이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지 않는다.’라는 말도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기도 하고 태어나지 않기도 한다.’라는 말도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말도 적용 될 수 없다.

사람은 알음알이[識]로써 여래를 묘사하면서 묘사를 시도하지만 여래는 그 알음알이를 제거했고, 그 뿌리를 잘랐고, 윗부분이 잘린 야자수처럼 만들었고, 멸절시켜,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하였다. 왓차여, 여래는 알음알이라는 이름에서 해탈하여 심오하고 측량할 수 없고 깊이를 헤아릴 수 없나니 마치 망망대해와도 같다. 그에게는 ‘태어난다.’라는 말이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지 않는다.’라는 말도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기도 하고 태어나지 않기도 한다.’라는 말도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말도 적용될 수 없다.”

 

32) 본경 §20은 『상윳따 니까야』제5권 「케마 경」(S44:1) §8에서 케마 비구니가 빠세나디 꼬살라 왕에게 설명한 것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33) 『상윳따 니까야』제5권 「케마 경」(S44:1) §8에 해당하는 주석서를 인용한다.

“‘물질로써 여래를 묘사하여(yena r?pena tath?gatarn pann?payam?no)’라는 것은 물질로써 길다거나 짧다거나 검다거나 희다라는 중생에게 속하는 것(satta-sa?k

h?ta)으로 여래를 묘사한다는 말이다.

‘물질을 여래께서는 제거하셨고(tar? r?par? tath?gatassa pah?nar?)’라는 것은 앞서 말한 형태의 물질이 일어남(samudaya-ppah?na)을 버리는 것을 말한다.

‘물질이라는 이름에서 해탈하셨다(r?pa-sa?kh?ya vimutto).’는 것은 미래에 물질이 생기지 않기(anuppatti) 때문에 그분에게는 물질적 부분이라거나 정신적 부분(r?pa

-ar?pa-ko??h?sa)이라는 그러한 것이 있을 것이라는 그런 인습적인 표현(voh?ra)이 해당되지 않는다(pa?ipassaddhatt?). 그렇기 때문에 물질이라는 개념(r?pa-pa??att

i)으로부터 해탈했다는 말이다.

‘심오하고(gambh?ro)’라는 것은 성향이 깊고(ajjh?saya gambh?rat?) 공덕이 깊기(gu?a-gambh?ra) 때문에 깊다. 그분의 공덕이 깊기 때문에 일체 지자인 여래가 태어나면 중생에게 속하는 여래라는 개념(pannatti)이 있게 된다. 그러나 그분에게는 더 이상[오온이-SAT]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중생이라는]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것을 보는 자에게는 중생에게 속하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는 것 등은 해당되지 않고 적용되지 않는다는 말이다.”(SA.iii.113)

 

21.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왓차곳따 유행승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마을이나 성읍의 멀지 않은 곳에 큰 살라나무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무상하여 가지와 잎사귀가 떨어지고 껍질 조각도 떨어지고 백목질도 떨어져 마침내 그것은 가지와 잎사귀도 제거되고 껍질 조각도 제거되고 백목질도 제거되어 순전히 심재만이 남을 것입니다. 그와 같이 고따마 존자의 이 가르침은 가지와 잎사귀가 제거되고 껍질 조각도 제거되고 백목질도 제거되어 순전히 심재만이 남은34) 것입니다.”

 

34) “‘심재만이 남는다(suddhar? s?re pati??hitar?).’는 것은 출세간법의 심재(lokutt

ara-dhamma-s?ra)만이 남는다는 말이다.”(MA.iii.199)

 

22.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방향을]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489]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시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려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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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차곳따 불 경(M72)이 끝났다.

[출처] 왓차곳따 불 경|작성자 광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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