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불교의 jhāna(禪)와 識의 관계에 대한 小考

운영자:연화/ 시작일2016-12-03 오후 5:13:54
주제

원시불교의 jhāna(禪)와 識의 관계에 대한 小考

 

   이춘옥 : 경북대학교 사회학과 박사

     

1.

본 연구는 四禪(cattāri jhānāi, 네 가지 )의 관계를 고찰해 본 것이다. 경전에서  四禪四無色의 과정에서 서로 다른 관련성을 보여준다는 점을 식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四禪의 관련성과1)

의 관련성은 서로 상반되게 나타나는데, 의 차이를 구별하지 않고 사용하면 四禪四無色의 차이가 애매해지고 이는 불교수행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2.

四禪에 대한 설명에서 은 분명히 언급된다. 대표적으로 心一境性이라는 표현이 그것인데, 이는 이 ‘산만함’의 주범으로 지적되는 것과 비교할 때 대조적이다.

 

[인용경문 ①]

viññāya하고서, 法相을 쫓고, 法相의 즐김에 묶이고, 法相의 즐김에 속박되고, 法相의 즐김에 결박되어 相應한다면 (viññāṇa)로 산만하게 되거나 흩어집니다. 벗들이여, 이와 같이 ‘로 산만하게 되고 흩어진다’라고 합니다.(중략) 벗들이여, 어떻게 로 자리잡는(고정되는, 안착하는) 것입니까? 벗들이여, 世間에서 비구가 貪慾(kāmā)로부터 벗어나고 不善法(akusala dhammā)로부터 벗어나고서, vitakkavicāra를 갖춘, 벗어남(viveka)에서 생겨나는 (pīti)와 樂(sukha)이 있는 初禪을 성취하여 머뭅니다. 그에게 ‘벗어남(viveka)에서 생겨나는 와 樂’을 쫓고, ‘벗어남에서 생겨나는 와 樂의 즐김’에 묶이고, ‘벗어남에서 생겨나는 와 樂의 즐김’에 속박되어, ‘벗어남에서 생겨나는 와 樂의 즐김’에 saññojana(결박)되어 相應(sayutta)하는 이 있다면 ‘로 자리잡는다’고 말합니다.2)

 

경전은 이 六(色相法相)saññojana(결박)되어 로 산만하게 되거나 흩어지는 것임을 지적한다. 初禪은 六根守護를 통하여 그러한 saññojana를 극복한 후에 성취되는 것이지만, 初禪부터 第四禪에 이르기까지의 jhāna()이 개입하게 되면, 이번엔 로 자리잡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saññojana를 풀지 못하게 된다.3)

이렇게 되면 四禪을 성취하고서도 해탈을 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四禪은 ‘어떠한 관계도 맺으면 안 되는 것’이다.

 


3.

四無色에 의존하고, 世間과 저 世間에도 의존하지만 四禪에 의존한다는 경문은 없다

[인용경문 ②]

‘…나에게 ()에 의존한 은 없을 것이다’고 닦아야 합니다.

‘…나에게 ()에 의존한 은 없을 것이다’고 닦아야 합니다.

‘…나에게 眼識(意識)에 의존한 은 없을 것이다’고 닦아야 합니다.

‘…나에게 眼觸(意觸)에 의존한 은 없을 것이다’고 닦아야 합니다. 

‘…나에게 眼觸生受(意觸生受)에 의존한 은 없을 것이다’고 …

‘…나에게 地界(識界)에 의존한 은 없을 것이다’고 …

‘…나에게 ()에 의존한 은 없을 것이다’고 …

‘…나에게 空無邊處(ākāsānañcāyatana)에 의존한 은 없을 것이다’고 …

‘…나에게 識無邊處(viññāṇañcāyatana)에 의존한 은 없을 것이다’고 …

‘…나에게 無所有處(ākiñcaññāyatana)에 의존한 은 없을 것이다’고 …

‘…나에게 非有想非無想處(nevasaññānāsaññāyatana)에 의존한 은 없을 것이다’고…

‘…나에게 이 世間(idhaloka)과 저 世間(paraloka)에 의존한 없을 것이다’고…’5)

 

위 인용경문에서 ‘…에 의존한 은 없을 것이다’라는 표현에 열거된 것들은 ‘saññojana의 대상이 되는 들’로서, 은 그 들에서 즐거움(assāda)隨觀(anupassanā)하는 방식으로 saññojana되어 있다.

석존은 제자들이 그 들에서 해로움(ādīnava)隨觀하도록 하기 위하여(saññojana를 해체하기 위하여), 緣起라는 ‘세 가지 방식으로 을 관찰’하도록 권장했다. 위의 인용경문에서는 五蘊에 의존하는 관계가 설해지고 있지만, 다른 경전에서 五蘊(dhātu)로 언급될 때의 경문’

을 살펴보면 그 경문에서 의 독특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色界(受界想界行界)의 거주처며 色界(受界想界行界)으로 묶이면 …色界(識界)(chanda)하고 (rāga)하면. 色相(聲相香相味相觸相法相)거주처에 묶이면…”8)

이라는 경문에서, 의 거주처(patiṭṭhā)’라는 것은 ‘이 머물고 있는 대상(ārammaa, 攀緣)’을 의미한다. 은 대상에 識住(viññáṇassa hiti)함으로써9) 四食10) 이라고 부르는 작용을 하며, 그러한 四食의 결과물이 (kāya)11) 의 형태로 나타난다. 의 이러한 관계를 표현한 용어가 六識身(cha viññāṇakāyā)이다. 六六은 六識身과 관련된 일련의 흐름을 설한다.12)  

이러한 흐름이 진행되는 근원적인 이유는 六外入處에서 ‘(mano)(piyanimitta)作意(manasikāra, 에 새김)함으로써 사띠(sati)가 혼란스러워졌기 때문’13

) 이므로, 사띠를 모으게 되면 흐름은 끊기게 된다.14) 사띠를 모으는 과정인 四念處수행에서 설해지는 ‘에서 하는 隨觀하며(samudaya-dhamma-anupassati)’라는 표현은 ‘六內入處․六外入處→六識身→六觸身→六受身→六愛身의 흐름’에서 ‘六→六→六→六’라는 (samudaya)을 보라는 것이다.15)

이와 같은 四念處수행을 통하여, 사띠와 法眼(을 보는 안목)을 갖추고, saññojana의 대상이 되는 들에서 다양한 해로움을 隨觀(無常非我隨觀)’하게 되면 의 존립이 방해를 받게 된다. 그렇게 의 존립기반을 박탈하면서 들어가는 경지가 四禪이지만, 初禪의 경지는 ‘벗어남(viveka)에서 생겨나는 (pīti)와 樂(sukha)’을 제공하기 때문에 이 개입할 여지가 남아있듯이, 第二禪第三禪第四禪에서도 이 개입할 여지는 있다. 그래서 初禪의 경우에는 ‘벗어남에서 생겨나는 와 樂’에 ‘이 의지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初禪 자체를 객관적으로 하도록 권유된다.

 

初禪(第四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는 이와 같이 생각한다.; “이 初禪(第四禪)도 결합된 것이며 의도된 것(abhisakhataabhisañcetayita)이다. 결합된 것, 의도된 것은 무엇이든지 그것은 無常하고 하는 이다”라고 안다. 거기에 머무는 그는 번뇌의 소멸에 도달한다.16)

 

인용경문은 jhāna()에 의존하는 것을 배척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한 배척에 실패한다면 자리잡고’ 결과적으로 saññojana(결박)는 그대로 유지되며, 身行(kāya-sakhāra)寂止(samatha)는 일시적인 것이 된다. 결국 성공적인 jhāna에서17) 은 설자리가 없다. 반면에, 인용경문 ②에서 보듯이 四無色에는 이 의존하는 것이 가능하다.

 




4.

’이라는 非色的 맥락에서 ‘은 동의어’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은 ‘수행에 임하는 방법론에 있어’ 어느 정도의 유사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유사점과 차이점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핵심어는 ‘평정(upekhā)’이다.

upekhā satipārisuddhicatutthajhāna(평정과 청정한 사띠의 第四禪)’이라는 언급에서의 upekhā(평정)는 ‘樂․를 버리고, 기쁨(somanassa, 즐거움)․슬픔(domanassa, 불쾌)을 소멸함으로써 樂도 도 없이 머무는 第四禪의 평정(upekhā)’이다.18)

이러한 평정은 본래부터 六外入處의 경험체계에 있었던 것이다. ()으로 ()을 보고서(~분별하고서) 기쁨(somanassa)이 발생될 ()에 다가가고, 슬픔(domanassa)이 발생될 ()에 다가가고, 평정이 발생될 () 다가간다”는19)

경문이 그 經證이다.(이 경문을 통하여 四禪六識이 성립하기 이전의 상태인 六外入處에서 수행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한 ‘평정의 계발’에 관한 설명은 『Indriyabhāvanāsutta』에서 볼 수 있다.20) 이 경은 수행자가 六外入處의 경험체계인 ‘()으로 ()을 보고서(~분별하고서)’는 ‘싫어하지 않는 것과 싫어하는 것, 그 둘 다를 다르지 않게 보고서, 평정을 지닌 자, 사띠와 알아차림을 지닌 자로 머물며,’ ‘고귀한 사람은 이처럼 을 계발한다’라고 설한다.21

 

Nissaṭṭhena h' āvuso pañcahi indriyehi parisuddhena manoviññāṇena kineyyan-ti? Nissaṭṭhena h' āvuso pañcahi indriyehi parisuddhena manoviññāṇena ananto ākāso ti ākāsānañcāyatananeyya, anantaviññāṇan-ti viññāṇañcāyatananeyya, na-tthi kiñcīti ākiñcaññāyatananeyyan-ti.

벗이여, 五根들로부터 벗어나고 청정(parisuddha)해진 意識(mano-viññāṇa)에 의해 무엇이 알려집니까? ―벗이여, 五根으로부터 벗어나고 청정해진 意識에 의해 무한한 공간이라는 空無邊處가 알려지고, 무한한 이라는 識無邊處가 알려지고, 아무 것도 없다는 無所有處가 알려집니다.22)

 

위 경문은 ‘과 관련된 수행은 四無色’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경문에 언급되는 ‘五根들로부터 벗어나고 청정해진(Nissaṭṭhena pañcahi indriyehi parisuddhena)’이라는 표현은 意識(mano-viññāṇa)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의 다섯 에서 벗어나 청정해진 것으로 해석되는데, 그러한 상황이 평정과 관련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空無邊處는 평정을 기반으로 계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地界)空界에 대해 이 떠나도록 만든다. 그러면 청정하고(parisuddha) 밝은(pariyodāta) (viññāṇa)만이 남는다. 으로 무엇을 아는가(jānāti)? 樂이라고 분별하고, 라고 분별하고, 非苦非樂이라고 분별한다. . 비구들이여, ()非苦非한 것 … 안다. 그리고 청정하고 밝고 유순하고 다루기 쉽고 빛나는 평정(upekhā)만이 남는다. . 그는 이와 같이 ‘만약 내가 이 같이 청정하고 이 같이 밝은 그 평정을 空無邊處(非有想非無想處)에 가져와 평정을 따르는 법을 가진 을 계발하면, 나의 평정은 그것을 의존하고 그것을 잡고서 오랜 시간 동안 유지될 것이다’고 분명히 안다.23)  

 

四禪이 평정을 확립하는데 주안점을 두는데 반하여, 四無色은 평정을 응용하는 측면이 강하다. 이렇게 ‘평정’을 키워드로 四禪四無色을 검토하면, 그 둘은 매우 유사한 수행론처럼 보이고, 또한 일련의 흐름을 갖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평정’의 본래 위치는 이 성립하기전의 상태인 六外入處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경전에 의하면 ‘upekhā satipārisuddhicatutthajhānaṁ’을 성취한 후 그 성취를 적용하는 곳은 六外入處이다.

 

初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第二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第三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第四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그는 ()으로 ()을 보고서(~분별하고서) 사랑스런 ()에 호감을 갖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은 ()에 혐오하지 않으며, 에 대한 사띠를 확립한 자로, 無量心을 가진자로 머문다. 그는 ‘그에게 악하고 不善이 남김없이(無餘, aparisesā) 사라지는’ 心解脫慧解脫있는 그대로 알게 된다.24)

 

인용경문에서 ‘()으로 ()을 보고서(~분별하고서) 사랑스런 ()에 호감을 갖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은 ()을 혐오하지 않음’이라는 언급은 ‘평정의 확립’을 의미한다. 물론 이 평정은 第三禪第四禪에서 언급되는 그 평정이다. 그리고 이 평정은 六外入處에 본래부터 있었던 것이지 새로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즉 ‘upekhā satipārisuddhicatutthajhānaṁ’에서 언급되는 ‘평정과 사띠’는 둘 다 六外入處에 본래부터 있었던 것이며, 그 둘이 사라짐으로 인하여 六識이 六外入處를 기대어 발생했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고려할 때, 四禪과 이후의 六外入處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그러나 ‘인용경문 ①’의 내용처럼 四禪이 개입하게 되면, 四禪을 통한 해탈은 실패하게 되고 四無色으로 넘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근거로, 적어도 원시불교의 수행론에 있어서 ‘을 분명히 구분하여야만 석존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석

** 여기에서 인용된 모든 Pāli 문헌은 PTS 판이며, 문헌의 약어Critical Pāli Dictionary의 기준을 따랐음.


1)  Anupadasutta(MN p.25)에 의하면 初禪부터 第四禪까지(경에는 無所有處까지) 作意(manasikāra)가 언급되므로 (mano)jhāna()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본다.

2)  MN pp.225-226.

3)  인용경문 ①에 이어서 설해지는 第二禪, 第三禪, 第四禪에서도 인용경문 ①처럼 이 개입되면 로 자리잡는다’고 설해진다.

4)  四禪의 관계가 설해지는 경문은 인용경문 ① 뿐이다.

5)  MN pp.259260.

6)  SN p.91. ; 이 경문은 齊識緣起(10연기)의 원인을 설하는 경문이다.

7)  “…… 비구들이여, 비구가 어떻게 ‘세 가지 방식으로 관찰(tividhūpaparikkha)'하는가? (dhātu)로  관찰하고(upaparikkhati), (āyatana)로 관찰하고, 緣起(paiccasamuppāda)로 관찰하는 것이다.SN p.65. ; MN p.61. 이하 Bahudhātukasutta에 설해지는 자세한 설명 참조.

8)  SN pp.9-10.

9)  “비구들이여, 인지하고 숙고하고 潛在시킨 그 대상(ārammaa, 攀緣)居住(hiti, , 머뭄)를 위한 것이고, 대상(ārammaa)이 있을 때 居住處(patiṭṭhā, 머무는 곳)가 있고, 거기에 머문 이 자라날 때(增長할 때) 名色의 나타남(顯現)이 있다. SN p.66.

10)  “비구들이여, … 무엇이 넷인가. 物質食(kabaikāra-āhāra), 觸食(phassa-āhāra), 意思食(manosañcetana-āhāra), 識食(viññāṇa-āhāra)이다. 四食(rāga)(nandi)(tahā)가 있으면, 그곳에 머문 增長한다. 머문 이 증장하는 곳에 名色顯現이 있다. 명색의 顯現이 있는 곳에 의 성장이 있으며, 의 성장이 있는 곳에 미래에 다른 (bhava)의 일어남이 있다. 미래에 다른 의 일어남이 있는 곳에 미래에 과 老가 있다.SN p.101.

11)  “(āhāra)(samudaya)으로부터 (kāya)이 있고, (nirodha)로부터 의 소멸(atthagama, 사라짐)이 있다.SN p.184.

12)  , yadidacha chakkāni. Tasuṇātha sādhukamanasikarotha , Bhagavā etad avoca: Cha ajjhattikāni āyatanāni veditabbāni, cha bāhirāni āyatanāni veditabbāni, cha viññāṇakāyā veditabbā, cha phassakāyā veditabbā, cha vedanākāyā veditabbā, cha tahākāyā veditabbā.MN pp.280-284. ; 요약하면 六內入處․六外入處→六識身→六觸身→六受身→六愛身.

13)  을 보고서(을 ñatvā 하고서) (piyanimitta)(mano)에 새기는(作意) 사람의 사띠(sati)는 혼란스러워진다. SN pp.73-74.

14)  “아지따여, 世間에서의 어떠한 흐름들이든지 / 사띠(sati)는 그것들을 막는 것이고 / 흐름들을  제어하는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 / 若에 의해 그것들은 그쳐진다. Sn no.1035.

15)  隨觀함으로서 얻어지는 五得果() 중의 하나가 法眼(dhammacakkhu)이다. MN. Vol.1. p.501. 참조. ; 에서 하는 漢譯 阿含은 보다 자세하게 열거한다. 如內入處 如是外入處 識身 觸身 受身 想身 思身 愛身 界身 五陰 亦如上說.” 『大正藏2p.224c.

16)  “… pahamajhāna(catutthajhāna) upasampajja viharati. So iti paisañcikkhati. Idam-pi kho pahamajhāna(catutthajhāna) abhisakhataabhisañcetayita, yakho pana kiñci abhisakhataabhisañcetayitatad-aniccanirodhadhamman-ti pajānāti. So tattha hito āsavānakhayapāpuṇāti, .MN p.350.

17)  인용경문 ①에서 보듯이 四禪이 주는 즐거움을 隨觀하게 되는 것은 사띠와 앎(法眼)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四念處수행으로 돌아가 다시 닦아야 된다.

18)  “Sukhassa ca pahānā dukkhassa ca pahānā pubbe va somanassadomanassānaatthagamā adukkhaasukhaupekkhā satipārisuddhicatutthajhānaupasampajja vihāsi.MN p.117.

19)  “Aṭṭhārasamanopavicāro aya, bhikkhu, puriso ti iti kho pan' etavutta. Kiñ c' etapaicca vutta? : Cakkhunā rūpadisvā somanassaṭṭhāniyarūpaupavicarati, domanassaṭṭhāniyarūpaupavicarati, upekkhaṭṭhāniyarūpaupavicarati, sotena saddasutvā ……, ghānena gandhaghāyitvā ……, jivhāya rasasāyitvā ……, kāyena phoṭṭhabbaphusitvā ……, manasā dhammaviññāya somanassaṭṭhāniyadhammaupavicarati, domanassaṭṭhāniyadhammaupavicarati, upekkhaṭṭhāniyadhammaupavicarati; iti cha somanassūpavicārā, cha domanassūpavicārā, cha upekkhūpavicārā. Aṭṭhārasamanopavicāro aya, bhikkhu, puriso ti iti yatavutta, idam etapaicca vutta." MN pp.239-240.

20)  MN p.298. ; 이 경은 ‘봉사와 귀머거리처럼 보지 않고 듣지 않는 것이 수행인 것으로 착각하는 것에 대한 질책으로 설해진다. 보고서(~분별하고서)도 그것들에 대하여 평정(upekhā)을 확립하여야 함을 설한다.

21)  “…, (cakkhunā~)manasā (rūpaṃ~)dhamma(disvā~) viññāya uppajjati manāpauppajjati amanāpauppajjati manāpāmanāpa. So sace ākakhati: Paikkūle appaikkūlasaññī vihareyyan ti, appaikkūlasaññī tattha viharati. Sace ākakhati: Appaikkule paikkulasaññī vihareyyan ti, paikkūlasaññī tattha viharati. Sace ākakhati: Paikkūle ca appaikkūle ca appaikkūlasaññī vihareyyan ti, appaikkūlasaññī tattha viharati. Sace ākakhati: Appaikkūle ca paikkūle ca paikkūlasaññī vihareyyan ti, paikkūlasaññī tattha viharati. Sace ākakhati: Paikkūlaca appaikkūlaca tad ubhayaabhinivajjetvā upekkhako vihareyyasato sampajāno ti, upekkhako tattha viharati sato sampajāno. Evakho ānanda, ariyo hoti bhāvitindriyo.MN pp.301-302.

22)  MN p.293.

23)  “ākāsadhātur ev'esā, taṃ …… cittavirājeti. Athāparaviññāṇayeva avasissati parisuddhapariyodāta, tena viññāṇena kiñci jānāti: sukhan ti pi vijānāti, dukkhan ti pi vijānāti, adukkhamasukhan ti pi vijānāti.  ……. Adukkhamasukhavedaniyabhikkhu, phassapaicca ……. evam eva kho, bhikkhu, athāparaupekkhā yeva avasissati parisuddhā pariyodhātā mudu ca kammaññā ca pabhassarā ca. So evapajānāti: Imañ ce ahaupekkhaevaparisuddhaevapariyodātaṃ ākāsānañcāyatanaupasahareyya, tadanudhammañ ca cittabhāveyya, …… viññāṇañcāyatanaṃ …… ākiñcaññāyatanaṃ ……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upasahareyyatadanudhammañ ca cittabhāveyya, evame ayaupekkhā tannissitā tadūpādānā ciradīghamaddhānatiṭṭheyyāti.MN pp.242-244.

24)  “… pahamajhānaupasampajja viharati. dutiyajhānaupasampajja viharati. tatiyajhānaupasampajja viharati. catutthajhānaupasampajja viharati. So cakkhunā rūpadisvā piyarūpe rūpe na sārajjati, appiyarūpe rūpe na byāpajjati, upaṭṭhitakāyasati ca viharati appamāṇacetaso, tañ-ca cetovimuttipaññāvimuttiyathā bhūtapajānāti yatth' assa te pāpakā akusalā dhammā aparisesā nirujjhanti.MN p.270.






 

© 2015 Company, Inc.